
4월의 봄빛은 따뜻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그 속에는
유난히 차가운 날의 기억이 묻혀 있다.
1960년 4월 19일,
그날 서울의 하늘은 얼마나 높았을까.
계절은 봄이었지만
거리 위엔 최루탄 연기와
누군가의 숨이 막히던 공기가 흘렀다.
누군가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누군가는 연설문 대신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날, 우리는
‘국가’가 침묵하는 법을,
‘국민’이 외치는 법을
다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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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선 건,
단지 분노 때문이 아니었다
이승만 정권의 장기 집권.
부정 선거의 만행.
그로 인한 정치적 불신과 사회적 억압.
하지만 4월 19일의 거리는
단지 분노만으로 가득했던 것이 아니다.
그곳엔 희망이 있었다.
정의가 있다면 누군가는 믿을 거라는
어떤 막연하지만 순수한 신념.
책가방 속 전단지,
구호와 노랫소리,
피 흘리는 친구를 부축하며도
계속 걷던 사람들의 발걸음.
그 모든 것이
당대의 '청춘'이 정의를 믿었던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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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4.19를
역사책의 한 장으로만 기억한다.
하지만 4.19는
지나간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질문이다.
국가란 무엇이어야 하는가.
권력은 누구에게 봉사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정의를 외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들은
해마다 4월 19일이 오면
다시 조용히 깨어난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오늘을 조금 더 진지하게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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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4.19 혁명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유일하게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기록된 사건이다.
총칼 없는 시민과 학생들이
국가의 방향을 바꾸어낸 유일한 날.
그 결과 이승만은 하야했고,
헌법은 개정되었으며,
민주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것은 절대 작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민주주의는 선언이 아니라, 반복되는 실천이라는 것.
지켜내야 하는 것,
다시 회복해야 하는 것,
조금씩 되살려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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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봄은,
누군가가 걸어간 봄 위에 놓여 있다
4.19는 단지 격동의 역사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건 청춘의 온도,
정의의 방향,
그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양심’의 기록이다.
우리는 지금
그날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그만큼 무뎌진 감각으로
정의를 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자.
이 조용하고 따뜻한 봄이
그날 거리 위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숨결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 역시
이 시대의 또 다른 4월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