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젊은 세대는 조용히 고민한다.
부모님은 괜찮을까.
생활은 어떻게 하실까.
그 빚, 혹시 내가 대신 갚게 되는 건 아닐까.
아무도 대놓고 말하진 않지만,
‘부모님의 부채’는 자녀들에게
경제적 부담만이 아닌, 정서적 혼란과 가족 관계에 대한 깊은 갈등을 던진다.
마치 설명되지 않은 청구서가 조용히 테이블 위에 놓인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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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노년층의 부채가 문제일까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지만,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세대 역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많은 노인들이 퇴직 이후 안정적인 소득 없이 살아가고 있다.
국민연금은 월평균 50만 원대.
가파른 물가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는 늘고, 돌봄 비용도 늘어난다.
생활을 위해, 혹은 자녀를 위해
신용대출이나 카드론을 쓰다 보면
부채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만다.
어쩌면 지금의 노년층은
한국 경제가 가장 뜨거웠던 시절을 버텨낸 사람들이지만,
그 성과의 혜택은 받지 못한 채
노후의 무게만 홀로 짊어진 세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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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부담이
자녀에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아무 말 없이 감당하고 있는 그 빚이,
어느 날 조용히 자녀에게 전해지는 순간이 있다.
부모가 사망하고 나서야 알게 되는 대출,
갑작스레 날아온 보증 관련 추심,
“그때 도와준다고 했던 거 아직 갚지 못했어…”라는 말 한마디.
자녀는 갑자기 선택의 기로에 선다.
돕지 않으면 죄책감이 밀려오고,
돕자니 자신이 무너질까 두렵다.
가족이기에 책임을 느끼지만,
가족이기에 더 깊이 상처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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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갖고 있을까
한국 사회엔 분명 부채를 조정하거나 상속을 포기할 수 있는 법적 장치들이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
법원을 통한 개인회생,
사망 후 3개월 내 한정승인 제도 같은 것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많은 고령층이
이 제도에 ‘접근하지 못한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서,
서류를 준비할 가족이 곁에 없어서,
혹은 그저 너무 복잡해서.
더욱이 상속과 관련한 제도는
‘적극적으로 신청하지 않으면 자동 상속되는 구조’다.
즉, 부모가 남긴 채무는
자녀가 따로 손을 쓰지 않으면
자동으로 그들의 몫이 되는 시스템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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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단순히
법적 권리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가족 안의 문제는 가족이 해결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살아왔다.
하지만 노년층의 부채는,
어떤 한 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이미 넘어서 있다.
문제는 사회적 구조에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은 아직도 일부 제도에 남아 있고,
기초연금은 현실 생활비에 한참 못 미친다.
의료보장은 증가했지만,
치매나 장기요양과 같은 시간이 길고 돈이 많이 드는 질환에 대해서는
제도가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결국, 부모는 선택지가 없어 빚을 지고,
자녀는 감정의 무게를 안고 갈등을 반복한다.
이건 구조가 만든 침묵이고,
침묵이 만든 가족 안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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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필요한 건,
말보다 시스템이다
“가족끼리 잘 이야기해 보세요.”
그 말이 얼마나 무력했는지 우리는 안다.
진짜 필요한 건 가족 간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
말하기 전에 사회가 먼저 책임지는 구조다.
고령자의 부채를 자동 감면하거나
채무조정을 쉽게 신청할 수 있는 고령자 특화 절차,
자녀가 실수로 상속 채무를 떠안지 않도록
기본 상속포기 시스템,
부모를 돌보는 자녀에게는 세제 혜택과
사회적 보상 체계가 작동하는 구조.
이런 시스템이 작동하면
그제야 가족은 서로를 향해 말할 수 있다.
미안하지 않고,
억울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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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무게를 덜어주는 건
돈이 아니라 사회다
노년의 부채는 단지 통계나 수치가 아니다.
그 안엔 우리가 외면해 온 수십 년의 누적된 구조가 있고,
그것을 이어받을까 두려워하는 자녀들의 조용한 불안이 있다.
이제는 이 불안을
가족 안의 책임으로만 남겨둘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나눠야 할 이야기로 꺼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자녀가 무너지지 않으며,
서로에게 계속 ‘가족’으로 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