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정으로 정리하는 한 주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질문은 너무 익숙해서, 가끔은 대답조차 자동으로 나오곤 한다.
‘그럭저럭’, ‘바빴지’, ‘피곤했어’
그 말들 안에 뭐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말해버린다.
그런데 한 주를 마무리하는 토요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주의 나는 어떤 감정으로 살아왔지?’
바쁜 일정, 해야 할 일들, 사람들과의 대화,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들.
그 모든 것들은 결국 어떤 감정을 남기고 갔을까?
나는 과연 그 감정들을 제대로 느끼고, 붙잡아 보았을까?
그렇게 한 주를 감정이라는 렌즈로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의외로, 단순한 ‘기분 정리’ 그 이상이었다.
감정은 생각보다 조용히 쌓인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크고 작은 감정을 느낀다.
기쁨, 안도, 불안, 짜증, 초조함, 외로움, 기대, 실망, 고마움…
그중 대부분은 아무 말도 없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우리의 하루는 계속된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은 사라진 게 아니다.
그냥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게가 되어 돌아온다.
때로는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고, 사소한 일에도 감정이 터지는 건
그동안 말없이 쌓아둔 감정의 퇴적층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감정을 ‘정리한다’는 건, 그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아니다.
미처 챙기지 못한 나를 마주하는 일이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마음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감정 정산표'를 써보다
이번 주에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하나하나 적어보았다.
월요일: 아침부터 피곤했지만, 동료의 작은 배려에 살짝 따뜻해졌던 날
화요일: 회의에서 의견이 묵살된 느낌. 짧게 분노, 오래 무기력
수요일: 아이와 산책하며 웃었고, 생각보다 많이 웃었다는 걸 깨달음
목요일: 할 일이 너무 많아졌지만,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묘하게 뿌듯했음
금요일: 하루 종일 긴장. 발표를 무사히 마치고 나서야 숨을 제대로 쉰 느낌
오늘: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시간에 살짝 죄책감, 그리고 점점 편안해짐
이걸 쓰면서 느꼈다.
나는 이번 주에도 나름대로 잘 버텼고, 잘 웃었고, 잘 참아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순간, 내 마음이 작게 흔들렸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감정은 성과가 아니다
이렇게 감정을 돌아보는 데에도, 자꾸 ‘의미’를 부여하려는 습관이 있다.
‘왜 그랬을까?’, ‘그건 정당했을까?’,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하지만 감정은 성과가 아니다.
잘 느끼는 것도, 덜 느끼는 것도, 괜찮고
그저 느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감정은 지나간 사건보다 나를 더 정확히 설명해 줄 때가 많다.
이번 주가 어땠는지 설명하는 데
‘일이 많았어’보다는
‘조금 외로웠지만, 그래도 웃을 수 있었어’가
더 진실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토요일 밤, 감정을 정리하는 습관
매주 토요일 밤, 이렇게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이 생겼다.
대단한 일기는 아니다.
그저 감정 몇 개를 조용히 적어보는 것.
그 감정 옆에 그 이유를 짧게 붙여보는 것.
그게 전부지만, 묘하게 마음이 정돈된다.
이 습관을 시작하고 나서, 일주일을 더 ‘내 것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이 기록된다는 건, 내가 내 삶에 더 가까이 있다는 뜻이니까.
마치 하루하루를 통과만 하지 않고, 제대로 살아낸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매일은 기억나지 않지만, 감정은 기억된다
사람은 하루하루의 디테일은 쉽게 잊는다.
하지만 그날의 기분은 오래 남는다.
‘그때 기뻤어’, ‘그땐 좀 힘들었지’, ‘그날은 이상하게 가벼웠어’
그래서 감정으로 한 주를 정리하는 건,
기억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고, 나 자신을 더 잘 돌보는 방식이다.
이번 주 당신은 어떤 감정을 가장 많이 느꼈나요?
혹은, 지금 이 순간 가장 가까이 있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그 한 가지 감정을 조용히 꺼내어,
그냥 알아봐 주세요.
잘 느낀 것도, 잘 버틴 것도, 모두 잘한 거니까.